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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Feature] From Bookshop Enthusiast to Bookshop Owner

by Han Min-jeong Translated by Sean Lin Halbert December 7, 2023

책방 덕후가 책방 주인이 되기까지

 

    고백하자면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20대까지는 특정 목적을 위해 책을 읽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유 없는 불안감이 커지고, 질문이 많아졌다. 불면증도 심해졌다. 어느 날부터는 책방에 가서 책을 읽었다. 동네에 단골 책방이 생겼다. 여행을 가서도 책방에 가서 책을 샀다. 책을 펼치고 종이를 만지면서 편안함을 느꼈다. 안심이 됐다. 책은 누군가가 나에게 보낸 편지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책방 덕후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또 다른 좋아하는 것이 생긴다. 책방에서 하는 행사가 있으면 무엇이든 참여했다. 그곳에서 작가들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경험을 통해 책을 더 깊게 입체적으로 읽게 됐다. 몇 해 전에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에서 안식년을 보내다가 함덕에 있는 책방에서 일하게 됐다. 그곳에서도 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의 책 세계는 더욱 확장되고 풍성해졌다. 몇 달 전, 나는 그곳에서 독립해 귤밭이 많은 동네에 고요편지라는 책방을 운영하게 됐다. 그저 책이좋아서, 책 곁에 있고 싶어서 벌인 일이다.



문학과 음악을 연결하다

    원하는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시대에 부러 책방에 와서 책을 사는 것은 비효율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책방에 갈까? 무의미하게 나열된 책으로는 소비자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없다. 책방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들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요즘 우리가 시집을 읽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아마도 당신은 시집을 읽은 지 오래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 다닐 때 배운 문학 교과서에서 읽은 시가 마지막은 아닌가? 많은 독자가 시 읽기를 어려워한다. 시를 감상하기보다 읽어내야 한다는 목적을 두고 시를 읽으려 한다. 책을 접하는 처음의 경험은 대부분 텍스트로 된 활자들을 읽는 것이다. 본래 시의 태생은 노래였다. 시는 입에입으로 전해져 왔다. 우리는 노래를 들을 때 노랫말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그저 멜로디가 좋아서 듣기도 한다. 시도 그렇게 처음 만난다면 어떨까? 책방 고요편지의 기획 프로그램은 그렇게 출발했다.

    고요편지가 있는 제주도 서귀포시 하효동 시골 마을에는 극히 소수지만 청년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문화생활을 할 여유가 없을뿐더러 문화 경험을 하고 싶어도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 있다. 하효의 이웃 동네 하례리에 위치한 브로컬리 연구소(Be locally Lab)‘는 이런 조건 속에서 청년들이 시골에서도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고요편지는 브로콜리 연구소와 함께 지난여름 한여름밤의 시음회(詩音會)‘를 함께 기획하고 진행했다. 시인과 독자가 함께 시를 낭독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참여자를 낭만이 사라져 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 청춘으로 상정하고, 그들에게 허은실 시인이 들려주는 회복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한여름밤의 시음회(詩音會)‘ 현장

 

    허은실의 회복기는 다양한 시각에서 회복의 이야기를 시로 쓴 책이다. 그는 개인 내면의 상처,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긴 상처, 제주 4.3사건과 같은 사회적·역사적 상처, 기후 위기와 같은 지구의 문제 등 그것들을 이겨낸 회복의 메시지를 시에 담았다. 우리는 이 시집을 주요 내용으로 전개하면서 허은실 작가의 다른 에세이와 시집에서 회복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글들도 같이 낭독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낭독 프로그램은 다른 서점에서도 더러 하고 있다. 하지만 한여름밤의 시음회는 낭독에 어울리는 음악을 함께 구성해 차별화를 두려 했다. 최근 많은 사람이 음악을 듣는 방식인 스트리밍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 리스트와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활용해 구성했다. 허은실 시인이 직접 선곡했는데, 기준은 그가 시를 쓸 때 영감을 받은 노래이거나 듣는 노래, 시와 어울리는 노래 등이었다. 참석자는 하나의 시를 시인의 목소리로 듣고, 뒤이어 노래로 듣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시적 경험과 음악적 경험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프로그램명을 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었다. 독자가 먼저 회복기시집을 읽고 시와 어울릴 것 같은 곡의 목록이었다. QR코드를 만들어서 참석자들에게 공유하고,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유튜브에서 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시를 바탕으로 사전에 창작한 곡을 싱어송라이터 양형욱이 부르기도 하고, 같은 시를 시인의 목소리로 낭독하기도 했다.




한여름밤의 시음회(詩音會)‘ 현장

(전략)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겨우 쓸 수 있을 것 같아
두 마음은 왜 닮은 것인지

무너진 꽃자리
약이 돋는다

비로소 연한 것들의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

허은실, 회복기 1, 회복기, 2022

 

     처음에는 참여자들이 회복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참여자들은 점점 자발적으로 시를 낭독하고 싶어 했고, 감상을 나누고 싶어 했다. 그중 글을 쓰는 참여자 한 명은 타인에 대한 분노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힘든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그는 달라졌다. 이제 타인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간 덕분에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오늘부터 허은실 시인의 팬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독자들이 시를 책으로 읽을 뿐만 아니라 시인의 육성으로 듣기, 노래로 듣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었으면 했다. 이런 입체적 문화 경험이 문학 경험의 그러데이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를 전보다는 더 친밀하게 느낄 수도 있고, 또 다른 시집에 흥미가 생겼을 수도 있다. 프로그램이 끝나도 독자에게 오래도록 남을 기억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만약 이들이 혼자 시집을 읽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날 책방에 모여 함께 시와 노래를 듣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더 깊이 교감할 수 있었고,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문학과 사진을 연결하다

     문학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을 하나 더 소개해 보겠다. ‘스틸네거티브클럽(stillnegativeclub)‘과 협업한 기획이다. 이곳은 필름을 현상하고, 필름 카메라와 필름을 판매하며, 사진에 대한 기록을 공유하는 사교 클럽이기도 하다. 이 기획은 사람들이 사진 경험과 문학 경험을 같이 하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사진 읽기라고 이름 붙인 프로그램의 의도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는 방식에서 읽는 방식으로 전환해 보는 것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사진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써보는것이다. 시각적 경험을 읽기쓰기로 옮겨가는 경험에는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 기획에서 독자들이 사진과 문학의 접점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기를 바랐다. 같은 장면을 보고 있어도 카메라로 찍으면 관점에 따라 사진은 다르게 나온다. 문학과 사진은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각자의 방식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지점이 있다.

 

 

 

사진 읽기현장

 

     참여자들은 자신의 일상이 담긴 한 장면을 디지털 파일의 형태(휴대폰 사진, 디지털 카메라 사진, 필름 스캔본)로 가져왔다. 현장에서 인화해서 물성이 생긴 사진을 받고, 각자의 사진을 자신이 읽은 책의 일부와 연결 지어 이야기했다. 돌아가며 감상을 나눈 후에는 자신의 사진에 대해 한 문장 쓰기를 했고, 마지막으로는 그것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렇게 사진에 하나의 이야기가 생겨났다.

 

문학적 경험의 확장과 온기의 나눔

     우리는 책방을 단지 책을 구매하기 위한 장소로 인식하지 않는다. 책이 있는 장소를 즐기고 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책방에 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책을 감상하는 방식은 눈으로 묵독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문학을 경험한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우리는 영상 매체에 익숙해져 텍스트 읽기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 책을 어려워하고 과제처럼 느끼는 경우도 많다. 문학을 즐겁게 경험하기보다 책을 읽어야 교양인이 될 수 있다는 강박으로 읽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책방은 문학과 독자를 연결하는 디딤돌 구실을 할 수 있다. 한 걸음씩 친해지도록 돕는 일 말이다. 나는 음악이나 사진처럼 친숙한 장르와 문학을 연결한 기획으로 문학을 친근하게 느끼도록, 텍스트를 읽는 것만이 문학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앞서 소개한 프로그램 사진 읽기참여자들에게 소개한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이훤, 시인동네, 2018)에는 밤에 큰 트럭이 지나가는 사진 한 장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의 제목은 한 사람의 밤이 지나가는 광경이다. 제목과 사진만으로 시가 된 이 작품을 소개하며 사진도 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었고, 타인이 사진을 통해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그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공유하고 싶었다. 우리는 사진을 책과 연결 지어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문학적 경험을 체화해 갔다. 이렇듯 장르를 넘나드는 경험은 문학 경험이 일상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일상을 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결국 문학적 경험의 확장은 우리 세계의 확장이 된다.

     책으로 마주 잡는 연결감을 희망합니다.” “서로의 고요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고요편지의 표어들이다. 인간의 일이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되며 가상화되는 시대에는 사람을 더는 만날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에게는 오히려 아날로그적 문화생활이 필요하다. 실재하는 사람들을 대면하고 눈빛을 나누며 온기를 주고받는 일 말이다. 종이로 된 책을 읽는 것은 손에 느끼는 감각을 경험하는 일이다. 누군가 그렇게 실재하는 감각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책 너머에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고요편지에 왔으면 좋겠다. 고요편지에서는 내가 읽은 헌책을 반려책이라고 한다. 내게는 돌보는 사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같이 반려책을 돌보고 책방을 돌보고 이곳에 깃든 고요를 돌본다. 당신이 이곳을 방문하면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온전함을 발견하길 바란다. 타인에게 자신을 증명할 필요 없이, 그대로의 자신을 온전히 느끼면 좋겠다. 그렇게 온전해진 기분으로 당신에게 인연이 될 책을 만나길 바란다. 그 책이 당신의 곁에 오래 머물길 바란다. 당신 곁에서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당신 곁엔 우리가 있다고전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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